2014년 3월 10일 월요일

구슬도 꿰어야 서말

"해저 보물선에 숨겨진 놀라운 세계사 (수중고고학 타임캡슐을 건져올리다)" 중에서 - p. 198 "그물에 무언가가 자주 걸린다. 아무것도 없는 바다 한가운데 물고기가 몰려드는 좋은 어장이 있다..." 어부로부터 이런 정보를 들었다면 반드시 확인이 필요하다. 해저 보물선은 물고기들의 서식처로써 최고의 장소가 된다. 도자기 항아리에는 문어가 자리를 잡고 있는 경우도 있다. 보물선은 어초처럼 물고기들에게 인기가 많다. 만일 낚시를 좋아하는 누군가가 바다에서 특별히 물고기가 잘 잡히는 명당을 알고 있다면 그 밑에 보물선이 잠자고 있는지도 모른다. from 독서 다이어리(http://goo.gl/HpGar)

바다에 가라 앉은 배가 물고기의 서식처가 된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이 사실을 역방향에서 생각해 본 사람이 수중고고학 관련자가 아닌 사람 중에 몇이나 될까?
많은 지식을 갖고 있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연결해서 지혜를 만들어 내지 못하면 결국 지식도 무용지물인 것이다.

2014년 3월 8일 토요일

폐쇄적인 사회

자기만의 생활 방식을 고수하지만 외부에 생존을 의지해야 하는 사회. 모두가 평등하다는 면에서 일종의 종교 공동체가 지향하는 이상향을 연상시키는데, 여기에는 과연 어떤 일화가 숨겨져 있을까?

p. 247
p. 248
마이코겐 주민은 일부러 오래된 물건을 쓰는 것 같아요. 주변에 압도적으로 많은 소위 이방인들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말이에요. 오래된 물건을 쓰고 이상한 전통을 유지함으로써 이방인들이 이곳에 발붙이지 못하도록 하자는 것이겠죠. 아주 의도적이에요.

2014년 3월 6일 목요일

비학산 전투

얼마전 왕수쩡의 "한국전쟁: 한국전쟁에 대해 중국이 말하지 않았던 것들"을 읽으면서 몹시 능력이 뛰어나고 용감한 중국군을 보며 이것이 과연 어디까지 사실일지 궁금했던 기억이 났다. 특히, 국군에 대해서는 좋게 말하는 적이 없었던 것으로 기억이 나서 지난 화요일 도서관에 가는 길에 비학산 전투 부분을 확인해 보았다.
역시나 국군이 잘 싸웠다는 내용으로 쓰지 않고 중공군의 공세를 저지하기 위해 패전한 3연대에 잔뜩 훈장을 쥐어준 다음 바로 전투에 투입했다는 식으로 기술되어 있다. 더불어 국군 7사단이 비학산을 지킬 수 있었던 이유는 국군이 잘해서가 아니라 유엔군이 이미 포위망을 무사히 빠져나갔기 때문에 중공군이 공세를 중단한 것으로 되어 있다.
역시 역사란 살아 남은 자의 기록이라고 코웃음을 치다가 잠시 당황했는데, 의정부정보도서관에는 "한국전쟁: 한국전쟁에 대해 중국이 말하지 않았던 것들"을 역사책이 아니라 소설책으로 분류했다는 사실을 이때 처음 깨달았던 것이다. 아, 이것은 이 책이 실제로 소설책인 것이냐 아니면 국군을 무시한 중국 작가에 대한 소심한 복수인 것이냐...


파운데이션 역사가 잊히는 세계

대략 20퍼센트쯤 읽은 결과 «파운데이션의 서막»에서는 한 가지 두드러진 세계관이 보인다. 아래 예로 든 구절이나 지면에서 보듯, 역사적 사실 중 상당 부분이 인류의 기억에서 사라져 어떤 행동을 하면서도 그 이유를 모를 지경에 이르렀다. 아마 가장 압권인 부분은 인류의 기원이라고 할 지구조차 그냥 신화처럼 취급하는 대목일 것이다.

p. 70 인류는 2500만 개의 은하 세계가 생기기 이전부터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인류가 하나의 행성에 살고 있었다는 전설도 있습니다.

p. 128


p. 132


하지만 잠시 생각해 보니 실제로 이렇게까지 될 것 같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역사라는 학문 자체가 계속 세부 단위로 분할되면서 어떻게든 기억을 보존할 테니까.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기억의 보존이 아니라 사람들이 그 기억에 지속적으로 접근하느냐가 되겠다. 피부가 노란 사람을 보고 동양인이라고 부르는 관행이 사라지지 않은 상태에서 그 이유를 궁금해 할 일이 없으면, 결국 그에 대한 기억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2014년 3월 4일 화요일

참호전과 전차



기갑전으로 본 한국전쟁, p. 404.
전선이 참호전 양상으로 바뀌자 전차부대는 기동성의 장점을 살리지 못하고 보병 지원이나 참호 파괴 등에만 주로 사용되었고, 가끔 소규모로 전개되는 기습 공세 작전에 투입되었다.
원래 전차란 참호전을 타개하기 위해 등장한 병기다. 한국전쟁을 기술한 문헌을 보면, 전장이 진지전 양상으로 변해서 전차가 제 역할을 할 기회가 없었다는 식의 서술이 많은데, 내가 보기에 그것은 오해의 여지가 많은 서술이다. 진지전 양상이 된 이유는 양측이 결정적 일격을 가할 의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ps

p. 404
전선의 양측은 수많은 참호를 파놓고(특히 고지에) 그 속에 소화기나 중화기를 설치하고 전투를 하였으므로, 전차는 아군이 점령한 고지 위에 올라가 직사 화기인 전차포로 적의 참호•관측소•지휘소•엄폐호를 가격하여 파괴하는 데 일조했다. 그러나 고지의 경사가 심한 경우 M26 퍼싱•M46 패튼•센추리온 전차는 무거워서 거의 올라가지 못하고, 이들보다 가벼운 M24와 무게 중심이 높은 M4 전차가 올라가 임무를 맡았다.


무게중심이 높으면 경사를 오르는데 유리한가?

2014년 3월 3일 월요일

M4와 T34의 전투

M4가 T34를 이기기 힘들다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일 텐데, "기갑전으로 본 한국전쟁"에서는 인천상륙작전 이후 북진 단계에서 좀 의아한 기록이 자주 등장한다.
10월 9일부터 시작된 금천 전투에서 "미군 M4 전차도 포탑 부근에 여러 발의 85mm 포탄을 맞았으나, 근거리에서 발사된 T34 전차의 85mm 포탄은 M4 전차의 철판을 관통하지 못하였다(p. 245)."
10월 31일, 정주로 진격하던 미군 제89전차대대의 경우, "전투가 시작되자마자 미군 M4 전차들은 T34 전차로부터 여러 발의 포탄을 맞았으나 거의 피해를 입지 않았고~(p. 257)"과 같은 서술이 나온다.
T34의 포탄이 M4의 장갑을 뚫지 못한 이유가 뭘까?

경인지구, 서울 전투

"기갑전으로 본 한국전쟁"을 읽으면서 계속 느끼는 것이지만, 시점이 계속 과거와 현재를 오가기 때문에 사건의 진행을 일관되게 파악하기 힘들다.
p. 221과 p. 222의 진술을 보면 적이 투입한 전차 53대를 전부 상실한 것이 언제인지 혼란스럽다. 경인지구에 투입된 전차와 서울 방어에 투입된 25여단이 다른 부대 소속이라고 생각하면 간단하게 해결될 문제이기는 하지만 석연치 않은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