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7월 25일 금요일

눈이 보는 것

출처: 로스뚜노프 외 전사연구소 편, 러일전쟁, 김종헌 역, p. 47

이런 첩보활동은 이후 태평양 전쟁에도 효력을 발휘하며, 내 기억에 따르면, "아메리칸 시저"에서 맥아더가 필리핀에서 실패한 이유 중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처럼 언급되어 있다.
결국 무엇을 보느냐가 아니라 어디를 중시하느냐가 성패를 좌우하는데, 정보활동에 지침을 제시할 수 있도록 전략이 선결돼야 한다.

패권주의

"러일전쟁사" 중에서 - p. 44
당시 영국과 러시아의 제국주의적 이익은 소아시아로부터 태평양에 이르는 광범위한 지역에 상충하고 있었다.
from 독서 다이어리(http://goo.gl/HpGar)

이 문장을 보고 나는 대단히 참신한 시각이라고 느꼈다. 왜냐하면 나는 영국이 러시아의 팽창을 저지한다는 시각으로 기술된 글만 읽었기 때문이다.
영국의 입장에서 기술된 내용을 보면 일단 유럽에서 진출이 좌절되자 러시아가 흑해로 그리고 극동으로 점차 동쪽에 비중을 두는 것처럼 말을 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런 관계는 미국과 중국의 힘겨룸으로 투사될 가능성이 있고 그 사이에 부상하게 될 새로운 국가의 가능성을 점치게 한다.

러일전쟁 준비에 동원된 청과 조선인

"러일전쟁사" 중에서 - p. 39
일본의 제국주의자들은 전쟁준비계획을 완수하기 위해 1895년에 청이 지불한 전쟁배상금의 90%를 위 계획에 투입했음에도 불구하고 청과 조선의 국민은 물론, 자국민까지 무자비하게 착취했다. from 독서 다이어리(http://goo.gl/HpGar)

조선은 이해가 되는데 청국인은 어느 지역을 의미하는지 모르겠다. 대만인가?

2014년 7월 22일 화요일

철학 속의 교훈

"파이돈" 중에서 -

p. 117

from 독서 다이어리(http://goo.gl/HpGar)

영혼의 불멸성에 대한 논변은 거의 이해하지 못했지만, 진리를 찾는 게 아닌 이기기 위한 논쟁을 경계하는 이 부분은 참으로 마음에 듭니다.
더불어 어떤 일에 실패했을 때는 그 일이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 내 능력이 부족했기 때문이 아닌지 잘 따져봐야 하는 거겠죠?

2014년 7월 20일 일요일

용기와 죽음

파이돈, 전헌상 옮김, p. 76
51)"그러면... 그러는 것이 아닌가?" 평판이나 명성을 잃을 것이 두려워 차라리 죽음을 택하는 상황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 노동 운동이나 민주화 운동의 역사를 보면 자신의 주장을 다른 사람이 들을 수 있도록, 분신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한 사람들이 나온다. 이들은 무엇이 두려워 죽음도 불사했을까? 아니, 그런 것이 아니라, 그들은 소크라테스가 정의한 바로 그런 의미에서 철학자였던 것일지도 모른다.

2014년 7월 19일 토요일

기만의 기초. 약한 처억

출처: 이상훈, 전략전술의 한국사, p. 278.
다시 말해 이괄의 반군을 상대한 관군이 짐짓 세력이 약한 척 기만전술을 구사했다는 뜻인데, 이렇게 지휘관들의 자질이 떨어지지 않음에도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을 당하게 된 것일까?
물론 그에 대한 답도 이미 앞에 언급되어 있는 지도 모른다.

같은 책 257-258쪽에 걸친 내용처럼 훈련을 일부러 게을리하기 시작했다지 않는가?

2014년 7월 18일 금요일

무장 병력을 보유하지 못한 상태에서 쿠데타

출처: 이상훈, 전략전술의 한국사, pp. 218-219.

이 대목에서 민간인의 무기 소지가 금지된 지금도 반란 세력에 의한 무기고 점령만 저지할 수 있다면, 사조직에 의한 정권 탈취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며칠 전 인력부족으로 인해 몇몇 파출소가 무기를 보관한 채 방치되고 있다는  뉴스를 들었던 기억이 났다. 그런 관점에서 생각해 보니 이석기의 내란 음모는, 정여립의 역모처럼 사전에 발각되지 않았다면 심각한 결과를 초래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2014년 7월 17일 목요일

우리가 잊고 있던 징병제 군대의 특징

중대장급 이상의 장교들은 하급 간부들이 병사들을 야만적인 방법으로 다루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부분이 참으로 인상적이다.

위화도 회군에 대한 사료 뒤집어 보기

출처
이상훈, 전략전술의 한국사, p. 161
이상훈, 전략전술의 한국사, p. 163

위화도까지 진군할 때와 회군할 때 요동정벌군이 이동한 속도를 비교할 생각을 했다니 저자의 발상이 너무나 참신하게 느껴진다. 더불어 이성계가 회군을 일부러 천천히 했다는 고려사의 기록을 결정적으로 반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