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2월 22일 수요일

위대한 3인의 전사들(원저: Masters of Battle)

제가 번역한 “Masters of Battle”이 플래닛미디어에서 출판됐습니다.

 

위에 보시는 것이 번역되어 나온 책입니다,

제가 갖고 있는 원서는 페이퍼백인데, 번역본은 아마 양장본으로 된 원서의 표지를 사용한 것 같습니다.

책소개는 옮긴이의 글로 대신하는 게으름 신공을 시전하겠으니 널리 양해하시기 바랍니다.

 

옮긴이의 말

이 책에서는 독특하게 같은 링 위에서 3명의 권투선수가 싸운다. 몽고메리는 롬멜과 난타전을 주고받은 끝에 제풀에 지쳐서 경기를 끝내지 못한다. 패튼은 롬멜을 쓰러지기 직전까지 몰아붙이지만 언제나 같은 편의 제지를 당한다. 두 선수의 거센 도전을 받는 챔피언, 롬멜은 언제나 자기 코치(히틀러)에게 발목을 잡힌다.

이 책의 저자 테리 브라이턴은 2차대전 유럽전선에서 가장 각광을 받았던 3명의 장군을 같은 링에 세워서 싸우게 한다는 발상을 적용함으로써 식상한 재료에 새로운 조리법을 도입해 색다른 요리를 만들어내듯이 이 책에서 위대한 지휘관의 조건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펼쳐 보였다.

브라이턴은 특정 순간에 롬멜과 패튼, 몽고메리를 차례로 보여주는 방법을 사용했기 때문에 당시 상황을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균형 잡힌 시각으로 제시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따로따로 제시했을 때에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을 사건이나 행동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했다. 아주 간단한 예로, 유럽에서 한창 전쟁이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미군이 참전하기만을 기다리며 안달복달하는 패튼의 모습이 이 책에서는 아주 생생하게 담겨 있다. 유럽에서 피비린내가 진동하고 있을 때 미국에서 한가하게 일상을 보내야 했던 패튼의 초조한 심정을 이 처럼 극명하게 보여주는 책은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우리가 이 책을 읽으면서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면, 폰 클라우제비츠의 『전쟁의 원리』에서 저자가 인용한 문구이다. 전쟁 이론은 과감한 행동을 선호한다. 하지만 과감함의 정도는 개인적으로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위대한 지휘관은 자신의 장점과 단점을 잘 파악하고 그 범위 내에서 과감한 결단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이다. 저자가 본문의 내용에 명시적으로 그런 사상을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이 책을 끝까지 읽은 독자라면 저자가 책 속에 풀어낸 모든 이야기는 결국 ‘과감한 결단’이라는 단어로 귀결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기본적으로 이 책은 2차대전 당시 세 장군의 경쟁을 제일 먼저 챔피언의 자리에 등극한 영리한 롬멜을 상대로 도전자 패튼과 몽고메리가 함께 링에 오른 권투시합으로 묘사한다. 패튼은 롬멜보다 더 롬멜다운 방식을 통해 그를 극복하려고 했고, 몽고메리는 롬멜과 정반대되는 방법으로 그를 이기려고 했다. 그 결과 패튼은 과감함의 극치를 달렸고, 몽고메리는 신중함의 극치를 달렸다. 패튼은 승리를 하기 위해 싸웠고, 몽고메리는 패하지 않기 위해 싸웠다.

신중한 몽고메리와 과감한 패튼은 한편이 되어 영리한 롬멜과 싸우는 동시에, 자기들끼리 치고받는 또 다른 싸움을 벌인다. 결국 그 링 위에서 이긴 쪽은 신중한 몽고메리였다. 과감한 결단을 선호한다는 전쟁 이론이 틀린 것일까? 우리는 여기서 과감한 결단이 단지 위험한 행동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몽고메리는 전격전이라는 새로운 전술이 눈부신 효과를 보이며 모든 사람들의 눈을 멀게 했을 때 전격전을 버리고 소모전을 택하는 모험을 감행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과감한 행동을 외칠 때 그는 모든 비난을 감수하고 신중한 방법을 택한 것이다. 그러나 그가 단순히 신중하기만 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시칠리아 전역의 초기 단계에서 잘 드러난다. 이 책에서 저자의 어조는 계속해서 몽고메리를 비난하는 분위기이지만, 우리는 롬멜의 영리함과 직관력, 패튼의 과감함과 더불어 몽고메리의 신중함도 주목해야 한다.

옮긴이는 독자 여러분에게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끝내기 전까지 절대 어떤 결론을 내리지 말 것을 권고한다. 저자가 단순히 전쟁 이론이 과감한 행동을 선호한다고 해서 그것만 제시하기 위해 이 책을 쓴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가 진짜 하고 싶은 말은 독자 여러분이 직접 확인해보기를 바란다.

끝으로, 어떤 이유인지 모르지만 일제식민지 조선어 어투를 익히게 된 나의 번역을 교정하느라 한동안 패튼처럼 다채로운 욕을 입에 달고 살았을 도서출판 플래닛미디어의 편집자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며, 몽고메리처럼 세밀하지도, 패튼처럼 과감하지도, 롬멜처럼 영리하지도 않은 나의 글쓰기 능력을 탓하며 역자 후기를 이것으로 줄인다.

2010년 12월 10일

김폭뢰(별명임)

2010년 11월 20일 토요일

Gigliola Cinquetti - Non ho l'età



나는 이종사촌 형들이 많다. 줄리오라 칭케티는 나보다 한참 연배가 높지만 형들이 들려주는 노래를 듣다가 알게된 여가수. 나에게 그녀는 지금도 이 나이로 기억된다.

2010년 11월 11일 목요일

전기는 쓰지 않으면 그냥 버려진다.

Ref. Fortune Vol. 162 No. 8 p. 18 Brainstorm
상기한 문헌에 따르면 발전소에서 생성되는 전기는 저장 돼지 않고 바로 소비가 된다고 한다. 그래서 내가 참조한 기사에서는 풍력발전을 대단히 비효율적인 사례로 들었다.
바람이 잘 불 때는 심지어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은 전기가 나온다. 하지만 전기를 저장할 수단이 없기 때문에 생성된 전기는 그냥 버려진다. 그러다 바람이 안 불게 되면 아예 전기가 안 나오기 때문에 풍력발전기에 의존하는 소비자는 갑자기 다른 곳에서 전기를 끌어 와야 한다. 그래서 최근에 발전소에서 생성된 전력 중 남는 것을 저장하기 위한 설비가 등장하고 있다는 것이 기사의 요지다.
여러분은 이런 이야기를 들어 본 적 있는가? 발전소에서 나오는 전력이 쓰지 않으면 낭비 될 수도 있단다. 나는 우리가 전기를 쓰는 방식이 발전소에서 필요한 양보다 더 많이 발전을 하고(어느 순간 수요가 솟구칠 수 있으니까), 여분은 비축해 두었다가 발전용량을 초과하는 수요가 생길 때 비축분을 개방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상기 <포춘>의 기사는 나의 생각을 완전히 뒤엎어 버렸다.
그렇다면 석유파동이 처음 생긴 것은 1970년대 말이지만 그 때 인류가 에너지 자원을 전력으로 전환하려고 하지 않은 이유는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있는 이유하고 전혀 다를 수도 있다.
당시 논의 됐던 태양이나 풍력, 조력 발전은 모두 자연의 변덕에 따라 발전량이 많아 질 수도 적어 질 수도 있지만 많을 때 그것을 비축해서 발전량이 적을 때를 대비할 방법이 없었다는 뜻 내지는, 사실은 이게 중요하다, 방법을 강구하려고 하지도 않았다는 이야기다.
지금 전력을 저장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으로 논의되고 있는 것은 리튬-이온 전지인데 이것은 노트북에 들어가는 전지다. 이해했는가? 리튬-이온이 대세가 되니까 전기를 저장하는 산업이 갑자기 주목을 받고 있다.

2010년 10월 13일 수요일

삽질하지마!

옛날 대학원 입학했을 때, 선배에게 처음으로 들었던 경고는 "열심히 일하고 욕 먹는 일 없도록 해"였다. 당시 선배는 일을 하면 처음부터 제대로 해야 한다고 그 뜻을 풀이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그것은 피터 드러커의 말을 선배님 방식으로 재해석한 것이었다.
"The effectiveness is to get the right thing done."
직역하면, 효과성은 옳은 일이 되게 하는 것이라는 말이다. 국내에 피터 드러커의 "The Effective Executive"의 번역서에는 이 부분에서 "옳은"이라는 표현이 빠져 있어서 원문의 의미가 완전히 죽어 버린 느낌이다.
대학원 당시로 돌아가 이렇게 생각해 보자. 당시 선배가 한 이야기의 요점은 네가 열심히 일했다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네가 한 일이 제대로 된 결과를 냈느냐가 중요하다는 뜻이었다. 실험을 해서 결과를 얻었다. "옳은"의 개념이 빠진 국내 번역대로라면 이것도 효과성이 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결과를 신뢰할 수 없어서 다시 실험해야 한다면 그 결과가 무슨 소용인가? 그렇게 때문에 우리는 "옳은" 결과를 얻기 위해 노력해야지 단순히 결과를 얻기 위헤서 노력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 때는 "열심히 일하고 욕 먹지 말자"로 표현했지만, 요즘 같으면 이런 말이 어울릴 것이다. "삽질하지마."

2010년 10월 11일 월요일

2010년 10월 11일 월요일 아침에 문득 떠오른 생각.

보통은 8시 10분에 의정부를 출발해서 12분에는 회룡역에 도착하는 지하철이 월요일에는 이상하게 시간을 지키지 못하는 것 같다. 오늘도 12분에 도착하는 지하철은 못 타겠거니 생각하고 역에 들어왔더니 정작 그 지하철은 19분이나 돼야 도착했고, 더욱이 앞에 간 지하철하고 시간간격이 몹시 짧았다.
거의 앞차가 출발하자마자 뒷차가 역을 향해 진입하고 있다는 안내문이 떳을 정도였으니 분명 간격이 짧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계속 앞차가 전역을 빠져나가지 못해서 서행 중이라는 방송이 나온다. 월요일마다 지하철 열차 시간이 달라져야 하는 이유가 뭘까?

더욱 웃긴 일은 사람들은 긴팔을 입고 있는데, 지하철은 아직도 난방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자리에 앉아서 잠시 눈을 감고 있는 데 차가운 기운이 얼굴을 살살 간지른다. 올해 봄 날이 더워졌을 때는 오히려 난방이 늦어서 지하철 안에서 땀을 뻘뻘 흘렸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계절의 변화를 잊은 지하철의 실내온도조정. 그들의 기준은 과연 무엇인가?

2010년 9월 23일 목요일

이미 소를 잃었더라도 외양간은 고쳐야 한다.

9월 21일 추석연휴 첫 날, 비가 오는 가운데 같은 업계에 종사하는 아가씨를 만나 점심을 함께 하기 위해 홍대입구역으로 갔습니다. 분명 약속을 잡을 때는 비온다는 말이 없었는데 억수로 쏟아지더군요.
약속한 사람과 만났을 때는 이미 홍대지하철역 입구가 물바다가 돼서 지날 수 없는 상황이라 지하철역과 연결된 건물을 통해 밖으로 나가야 했습니다. 비가 너무 세차게 오니까 신발과 옷이 순식간에 젖더군요.
더욱 웃긴 것은 멀리 갈 수 없어서 가까운 중국집에 들어갔는데, 그 집도 빗물이 새더라는 것입니다. 나름 2층에 있는 약간 고급스러운 집이었는데 깜짝 놀랐습니다. 가방이 젖는 줄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누다가 결국 빗물 때문에 밖으로 나왔습니다.
한잔의 룰루랄라라는 커피집을 가려는데, 롯데시네마 건물 뒤에서는 맨홀 뚜껑이 역류하는 물로 들썩거려고 "한잔의 룰루랄라"는 영업을 하지 않았습니다. 두 번째 선택인 "커피와 사람들" 역시 문을 열지 않아서 간신히 맞은 편에 있는 커피집에 들어갔습니다.
나름 즐거운 대화를 나누다 6시경이 되어서 각자 헤어지기로 하고 밖을 나왔는데, 이상한 일이 시작되었습니다. 아가씨의 구두굽이 부러진 것입니다. 그래도 걷는 데는 지장이 없어서 일단 홍대입구역으로 들어갔는데, 이번에는 역이 침수되어 지하철이 서지 않는답니다.
그래서 택시를 타고 합정역으로 갔습니다. 여기서 가장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지하철 안으로 들어가려던 순간 아가씨가 지갑을 분실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 것입니다. 지갑 안에 모든 것이 들어 있으니 저에게 귀가할 차비까지 빌려야 할 형편이 된 아가씨의 체면이 완전히 구겨지게 된 것입니다.
그날 점심값과 커피값을 제가 계산했다고 아가씨가 택시비를 내다가 지갑을 떨어뜨린 것 같았습니다. 일이 이렇게 되니 저도 참 난감했습니다. 먼저 차에서 내려 지갑을 챙기는지 잘 봐주었어야 하는데, 비가 오니 우산을 쓰느라 뒤를 돌아보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나름 그 아가씨보다는 어른이고 장교출신이며 남자인 제가 아가씨를 제대로 보호하지 못했습니다.

이미 벌어진 일은 어쩔 수 없지만, 이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우리는 소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말을 많이 합니다. 보통 그것은 약간 비웃는 의미로 많이 사용되는데, 현실은 소를 잃은 다음이라도 외양간을 고쳐야 더 큰 피해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제 생각해 보니 그날은 정말 평상시처럼 행동해서는 안 될 이유가 여러 가지 있었습니다. 지하철역이 침수됐고 식당에서는 빗물이 샜습니다. 맨홀 뚜껑도 튀어오를 것처럼 들석거렸죠. 이런 때에는 분명 평소와 다른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고 예측을 미리 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자책해 봅니다. 사실 홍대입구역에서 지하철을 탈 수 없다고 했을 때, 저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당황했습니다. 아가씨는 바로 집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어디를 들린다고 해서 계속 2호선을 타기 위해 택시를 타고 합정역으로 갔지만, 원래 여기서는 아가씨를 설득해 그냥 집으로 들어가게 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고민해봅니다.
그날 저와 함께 했던 아가씨는 물에 젖고 구두가 망가졌으며 지갑을 잃었습니다. 소를 잃은 다음 외양간을 고치면 적어도 지갑을 잃는 사태를 방지할 수는 있었던 것이 아닌지 뒤늦게 후회해 봅니다.
네, 이미 소를 잃었더라도 외양간은 고쳐야 합니다.

2010년 6월 28일 월요일

미군에 금성무공훈장은 없어요.

오늘 출판사의 편집자와 격렬한 메신저질 도중에 작년에 나온 책에서 심각한 오역을 발견했습니다.
원문은 Silver Star인데 "금성"무공훈장이라고 번역하는 초대형 상상력을 발휘했더군요. 그런데 말이죠, 여러분은 미군에 금성무공훈장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생각하시죠? 그런데 오늘 보니까 그런 훈장은 없었습니다.
해군을 기준으로 하면 대충 훈장의 서열이 아래와 같이 되며, 당근 있어야 할 것으로 생각되는 Gold Star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Medal of Honor
Navy Cross
Silver Star
Bronze Star

그런데 번역을 하다보면 훈장과 관련하여 Gold Star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것은 훈장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훈장에 추가로 부여하는 일종의 기장입니다. 이런 것을 영어로는 Award Star라고 하며, 전에 받았던 것과 같은 훈장에 해당하는 공훈을 세웠을 때 훈장대신 별모양의 기장을 훈장에 추가해 주는 것이 Award Star입니다.
더 재미있는 것은 미군의 관점에서는 골드보다 실버가 더 등급이 높다고 하네요. 그래서 미군에서 소령과 중령이 같은 모양의 계급장을 사용하지만 은색계급장이 중령을 의미하게 된 것 같아요. Award Star의 경우 Gold Star 기장을 다섯 번 받은 상태에서 여섯 번째 Gold Star를 받게 된 경우에는 그 대신 Silver Star를 준다고 합니다. 그래서 같은 훈장을 6회, 11회, 16회 받을 때 Silver Star가 하나씩 생긴다고 합니다.
하지만 같은 훈장을 6번 받는 사람은 거의 없기 때문에 실제로 Silver Star 기장이 수여된 경우는 거의 없고, 원문에서 Silver Star를 언급한 경우 그것은 은성무공훈장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대신 Gold Star를 언급했다면, 이것은 실제 미군에 존재하는 훈장이 아니기 때문에 기존의 무공훈장에 부가되는 금성기장으로 봐야 하지요.
오늘 배운 사실을 잊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카페도 오랜 만에 방문했기 때문에 두서없이 몇 자 적어봤습니다.

2010년 5월 8일 토요일

놀이에 열중하는 어린 아이를 보고 문득 떠오른 생각.

토요일 오후 한산한 지하철 역 안에서 엄마와 함께 나들이를 나온 아이는 나름 열심히 발차기를 연습했다. 무엇이 그리 재미있었는지 발차기에만 몰두하던 아이는 옆으로 지나가는 청년의 다리를 걷어차고 말았다.
그만큼 아이들은 한 가지에 몰두하면 주위를 의식하지 않는다. 만약 어떤 어른이 아이들만큼 집중력을 발휘할 수 있다면, 분명 그는 엄청난 지적 성취를 이루어 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인류는 몇몇 소수의 천재들이 간헐적으로 등장하면서 인류를 급격하게 앞으로 밀어 붙였을 때만, 눈에 띄는 진보에 성공할 수 있었다. 왜 인간은 성장하면서 어린 시절의 집중력을 잃는 것일까?
아마 인간이 주위의 동물들과 별로 차이가 없던 시절에는 생존을 위해서 한 가지에 집중하기보다는 여러 가지를 동시에 살필 수 있는 능력이 더 중요 했기 때문에 인간은 나이가 들면서 점점 더 집중력을 무시하도록 진화한 것이 아닐까?
우리가 천재라고 알고 있는 사람들을 생각해 보자. 아인슈타인은 쥐구멍이 하나인 이유를 이해하지 못했다고 한다. 실험실에 자꾸 쥐가 들어오자 들어오는 구멍만 있고 나가는 구멍이 없어서 쥐가 실험실 밖으로 못 나가니 구멍을 하나 더 뚫으라고 했다지. 그의 명성이 이미 하늘을 찌르고 있지 않았다면, 그리고 우리 대한민국이었다면, 아인슈타인은 정신병원에서 여생을 보냈을지도 모르겠다. 그 외에도 너무나 시대를 앞서간 나머지 불행한 삶을 살았던 천재들의 이야기는 역사 속에서 풍부하게 등장한다.
그렇다. 우리가 알고 있는 천재들은 자기가 잘 하는 일 외에 다른 일은 전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들에게, 이 세상은 자신의 집중을 방해하는 요소들이 너무나 많은 것이다. 여기서 나와 같은 범인은 천재의 약점을 보게 된다. 천재는 질투할 존재가 아니라 보살펴야 할 존재다.
주위를 둘러 보면, 나보다 뛰어난 무엇인가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널리고 널렸다. 나는 그런 사람들의 장점을 살려주기보다 그를 질투하지는 않았을까? 하지만 그는 그런 장점을 갖고 있는 것만큼 커다란 단점도 갖고 있음을 나 또한 잘 알고 있다. 그러니 그의 장점보다는 약점을 부각시키며 그를 헐뜯을 수 있었겠지.
지하철에서 발차기를 하는 아이를 보며, 천재란 질투의 대상이 아니라 소중하게 쓰다듬어야 할 취약한 존재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어쨌든 그들이 없었다면, 우리는 아직도 벌거벗은 채 돌도끼를 들고 산야를 뛰어다니고 있을지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