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오후 한산한 지하철 역 안에서 엄마와 함께 나들이를 나온 아이는 나름 열심히 발차기를 연습했다. 무엇이 그리 재미있었는지 발차기에만 몰두하던 아이는 옆으로 지나가는 청년의 다리를 걷어차고 말았다.
그만큼 아이들은 한 가지에 몰두하면 주위를 의식하지 않는다. 만약 어떤 어른이 아이들만큼 집중력을 발휘할 수 있다면, 분명 그는 엄청난 지적 성취를 이루어 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인류는 몇몇 소수의 천재들이 간헐적으로 등장하면서 인류를 급격하게 앞으로 밀어 붙였을 때만, 눈에 띄는 진보에 성공할 수 있었다. 왜 인간은 성장하면서 어린 시절의 집중력을 잃는 것일까?
아마 인간이 주위의 동물들과 별로 차이가 없던 시절에는 생존을 위해서 한 가지에 집중하기보다는 여러 가지를 동시에 살필 수 있는 능력이 더 중요 했기 때문에 인간은 나이가 들면서 점점 더 집중력을 무시하도록 진화한 것이 아닐까?
우리가 천재라고 알고 있는 사람들을 생각해 보자. 아인슈타인은 쥐구멍이 하나인 이유를 이해하지 못했다고 한다. 실험실에 자꾸 쥐가 들어오자 들어오는 구멍만 있고 나가는 구멍이 없어서 쥐가 실험실 밖으로 못 나가니 구멍을 하나 더 뚫으라고 했다지. 그의 명성이 이미 하늘을 찌르고 있지 않았다면, 그리고 우리 대한민국이었다면, 아인슈타인은 정신병원에서 여생을 보냈을지도 모르겠다. 그 외에도 너무나 시대를 앞서간 나머지 불행한 삶을 살았던 천재들의 이야기는 역사 속에서 풍부하게 등장한다.
그렇다. 우리가 알고 있는 천재들은 자기가 잘 하는 일 외에 다른 일은 전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들에게, 이 세상은 자신의 집중을 방해하는 요소들이 너무나 많은 것이다. 여기서 나와 같은 범인은 천재의 약점을 보게 된다. 천재는 질투할 존재가 아니라 보살펴야 할 존재다.
주위를 둘러 보면, 나보다 뛰어난 무엇인가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널리고 널렸다. 나는 그런 사람들의 장점을 살려주기보다 그를 질투하지는 않았을까? 하지만 그는 그런 장점을 갖고 있는 것만큼 커다란 단점도 갖고 있음을 나 또한 잘 알고 있다. 그러니 그의 장점보다는 약점을 부각시키며 그를 헐뜯을 수 있었겠지.
지하철에서 발차기를 하는 아이를 보며, 천재란 질투의 대상이 아니라 소중하게 쓰다듬어야 할 취약한 존재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어쨌든 그들이 없었다면, 우리는 아직도 벌거벗은 채 돌도끼를 들고 산야를 뛰어다니고 있을지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