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4월 8일 금요일

지하철의 양자화

의정부에서 서울로 들어가는 출근시간 지하철 1호선은 가끔 급행이라는 것이 존재해서 앞선 열차를 추월하는 경우가 있다. 인천급행은 의정부, 회룡, 도봉산, 창동, 성북에서만 멈추고 다른 역은 통과한다. 나처럼 회룡역에서 타는 경우 두 정거장만 멈추고 성북역에 도착하게 된다.
출근시간에 반드시 지하철을 앉아서 가야 하는 나는 성북역에 내리면 가급 서동탄행 열차가 거기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항상 자리에 앉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서 자주 성북역에서 열차를 갈아타는 편이다.
그런데 급행열차가 오기 바로 직전에 열차를 타게 되면 모든 역에 다 정차하면서 뒤에 오는 급행열차에 추월을 당해 성북역에는 오히려 늦게 도착하게 된다. 재미 있는 것은 급행열차를 타고 일찍 도착하든 그 앞의 일반 열차를 타고 몇 분 뒤에 도착하든 알고 보니 내가 성북역에서 갈아타는 열차는 그들 두 열차를 지나보낸 다음에 출발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결국 내가 회룡역에서 어떤 열차를 타든 성북역에서 대기하다가 출발하게 되어 결국 시청역에서 2호선으로 갈아타게 되는 시간은 똑같다는 말이다.
그런 생각을 하다보니 고등학교 화학시간에 원자의 양자거동에 대해 배웠던 것이 기억난다. 당시 나는 양자거동은 현실세계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그들만의 세계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내가 바로 양자들과 같은 거동을 보이고 있다. 그저 앉아 가기 위해 결국 최종 도착시간은 똑같아지는 방법을 택하고 있는 것이다.
앉아서 가는 데 집착하지 않았으면, 이런 엉뚱한 상상은 할 일이 없었겠지?

2011년 1월 8일 토요일

추억의 물건

 

문득 책상 서랍을 열었다가 발견한 아버지의 물건들 중 하나. 사진 속의 물건이 무엇인지 기억하고 있는 분들도 이제는 많지 않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뒷면을 찍은 사진을 보니 이것이 공중전화카드라는 사실이 분명해 지네요. 우리집에는 아직도 공중전화카드가 포장도 뜯지 않은 상태로 십여 개 정도 남아 있습니다.

아버지께서 상공회의소를 정년퇴직하고 잠시 계약직으로 몇 년을 더 근무하신 이래로 거의 10년이 흐른 것 같은데, 이 물건은 아직도 왜 이렇게 많이 남아 있는 것일까요?

혹시 공중전화박스가 아직도 남아 있다 하더라도 이 카드를 쓸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하지만 우리곁을 떠나신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왈칵 밀려오네요.

길을 가다 공중전화박스를 발견하면 옛친구들에게 전화나 한 번 해보려고 일단 한 장을 지갑에 넣고 나왔습니다.

2010년 12월 22일 수요일

위대한 3인의 전사들(원저: Masters of Battle)

제가 번역한 “Masters of Battle”이 플래닛미디어에서 출판됐습니다.

 

위에 보시는 것이 번역되어 나온 책입니다,

제가 갖고 있는 원서는 페이퍼백인데, 번역본은 아마 양장본으로 된 원서의 표지를 사용한 것 같습니다.

책소개는 옮긴이의 글로 대신하는 게으름 신공을 시전하겠으니 널리 양해하시기 바랍니다.

 

옮긴이의 말

이 책에서는 독특하게 같은 링 위에서 3명의 권투선수가 싸운다. 몽고메리는 롬멜과 난타전을 주고받은 끝에 제풀에 지쳐서 경기를 끝내지 못한다. 패튼은 롬멜을 쓰러지기 직전까지 몰아붙이지만 언제나 같은 편의 제지를 당한다. 두 선수의 거센 도전을 받는 챔피언, 롬멜은 언제나 자기 코치(히틀러)에게 발목을 잡힌다.

이 책의 저자 테리 브라이턴은 2차대전 유럽전선에서 가장 각광을 받았던 3명의 장군을 같은 링에 세워서 싸우게 한다는 발상을 적용함으로써 식상한 재료에 새로운 조리법을 도입해 색다른 요리를 만들어내듯이 이 책에서 위대한 지휘관의 조건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펼쳐 보였다.

브라이턴은 특정 순간에 롬멜과 패튼, 몽고메리를 차례로 보여주는 방법을 사용했기 때문에 당시 상황을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균형 잡힌 시각으로 제시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따로따로 제시했을 때에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을 사건이나 행동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했다. 아주 간단한 예로, 유럽에서 한창 전쟁이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미군이 참전하기만을 기다리며 안달복달하는 패튼의 모습이 이 책에서는 아주 생생하게 담겨 있다. 유럽에서 피비린내가 진동하고 있을 때 미국에서 한가하게 일상을 보내야 했던 패튼의 초조한 심정을 이 처럼 극명하게 보여주는 책은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우리가 이 책을 읽으면서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면, 폰 클라우제비츠의 『전쟁의 원리』에서 저자가 인용한 문구이다. 전쟁 이론은 과감한 행동을 선호한다. 하지만 과감함의 정도는 개인적으로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위대한 지휘관은 자신의 장점과 단점을 잘 파악하고 그 범위 내에서 과감한 결단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이다. 저자가 본문의 내용에 명시적으로 그런 사상을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이 책을 끝까지 읽은 독자라면 저자가 책 속에 풀어낸 모든 이야기는 결국 ‘과감한 결단’이라는 단어로 귀결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기본적으로 이 책은 2차대전 당시 세 장군의 경쟁을 제일 먼저 챔피언의 자리에 등극한 영리한 롬멜을 상대로 도전자 패튼과 몽고메리가 함께 링에 오른 권투시합으로 묘사한다. 패튼은 롬멜보다 더 롬멜다운 방식을 통해 그를 극복하려고 했고, 몽고메리는 롬멜과 정반대되는 방법으로 그를 이기려고 했다. 그 결과 패튼은 과감함의 극치를 달렸고, 몽고메리는 신중함의 극치를 달렸다. 패튼은 승리를 하기 위해 싸웠고, 몽고메리는 패하지 않기 위해 싸웠다.

신중한 몽고메리와 과감한 패튼은 한편이 되어 영리한 롬멜과 싸우는 동시에, 자기들끼리 치고받는 또 다른 싸움을 벌인다. 결국 그 링 위에서 이긴 쪽은 신중한 몽고메리였다. 과감한 결단을 선호한다는 전쟁 이론이 틀린 것일까? 우리는 여기서 과감한 결단이 단지 위험한 행동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몽고메리는 전격전이라는 새로운 전술이 눈부신 효과를 보이며 모든 사람들의 눈을 멀게 했을 때 전격전을 버리고 소모전을 택하는 모험을 감행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과감한 행동을 외칠 때 그는 모든 비난을 감수하고 신중한 방법을 택한 것이다. 그러나 그가 단순히 신중하기만 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시칠리아 전역의 초기 단계에서 잘 드러난다. 이 책에서 저자의 어조는 계속해서 몽고메리를 비난하는 분위기이지만, 우리는 롬멜의 영리함과 직관력, 패튼의 과감함과 더불어 몽고메리의 신중함도 주목해야 한다.

옮긴이는 독자 여러분에게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끝내기 전까지 절대 어떤 결론을 내리지 말 것을 권고한다. 저자가 단순히 전쟁 이론이 과감한 행동을 선호한다고 해서 그것만 제시하기 위해 이 책을 쓴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가 진짜 하고 싶은 말은 독자 여러분이 직접 확인해보기를 바란다.

끝으로, 어떤 이유인지 모르지만 일제식민지 조선어 어투를 익히게 된 나의 번역을 교정하느라 한동안 패튼처럼 다채로운 욕을 입에 달고 살았을 도서출판 플래닛미디어의 편집자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며, 몽고메리처럼 세밀하지도, 패튼처럼 과감하지도, 롬멜처럼 영리하지도 않은 나의 글쓰기 능력을 탓하며 역자 후기를 이것으로 줄인다.

2010년 12월 10일

김폭뢰(별명임)

2010년 11월 20일 토요일

Gigliola Cinquetti - Non ho l'età



나는 이종사촌 형들이 많다. 줄리오라 칭케티는 나보다 한참 연배가 높지만 형들이 들려주는 노래를 듣다가 알게된 여가수. 나에게 그녀는 지금도 이 나이로 기억된다.

2010년 11월 11일 목요일

전기는 쓰지 않으면 그냥 버려진다.

Ref. Fortune Vol. 162 No. 8 p. 18 Brainstorm
상기한 문헌에 따르면 발전소에서 생성되는 전기는 저장 돼지 않고 바로 소비가 된다고 한다. 그래서 내가 참조한 기사에서는 풍력발전을 대단히 비효율적인 사례로 들었다.
바람이 잘 불 때는 심지어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은 전기가 나온다. 하지만 전기를 저장할 수단이 없기 때문에 생성된 전기는 그냥 버려진다. 그러다 바람이 안 불게 되면 아예 전기가 안 나오기 때문에 풍력발전기에 의존하는 소비자는 갑자기 다른 곳에서 전기를 끌어 와야 한다. 그래서 최근에 발전소에서 생성된 전력 중 남는 것을 저장하기 위한 설비가 등장하고 있다는 것이 기사의 요지다.
여러분은 이런 이야기를 들어 본 적 있는가? 발전소에서 나오는 전력이 쓰지 않으면 낭비 될 수도 있단다. 나는 우리가 전기를 쓰는 방식이 발전소에서 필요한 양보다 더 많이 발전을 하고(어느 순간 수요가 솟구칠 수 있으니까), 여분은 비축해 두었다가 발전용량을 초과하는 수요가 생길 때 비축분을 개방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상기 <포춘>의 기사는 나의 생각을 완전히 뒤엎어 버렸다.
그렇다면 석유파동이 처음 생긴 것은 1970년대 말이지만 그 때 인류가 에너지 자원을 전력으로 전환하려고 하지 않은 이유는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있는 이유하고 전혀 다를 수도 있다.
당시 논의 됐던 태양이나 풍력, 조력 발전은 모두 자연의 변덕에 따라 발전량이 많아 질 수도 적어 질 수도 있지만 많을 때 그것을 비축해서 발전량이 적을 때를 대비할 방법이 없었다는 뜻 내지는, 사실은 이게 중요하다, 방법을 강구하려고 하지도 않았다는 이야기다.
지금 전력을 저장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으로 논의되고 있는 것은 리튬-이온 전지인데 이것은 노트북에 들어가는 전지다. 이해했는가? 리튬-이온이 대세가 되니까 전기를 저장하는 산업이 갑자기 주목을 받고 있다.

2010년 10월 13일 수요일

삽질하지마!

옛날 대학원 입학했을 때, 선배에게 처음으로 들었던 경고는 "열심히 일하고 욕 먹는 일 없도록 해"였다. 당시 선배는 일을 하면 처음부터 제대로 해야 한다고 그 뜻을 풀이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그것은 피터 드러커의 말을 선배님 방식으로 재해석한 것이었다.
"The effectiveness is to get the right thing done."
직역하면, 효과성은 옳은 일이 되게 하는 것이라는 말이다. 국내에 피터 드러커의 "The Effective Executive"의 번역서에는 이 부분에서 "옳은"이라는 표현이 빠져 있어서 원문의 의미가 완전히 죽어 버린 느낌이다.
대학원 당시로 돌아가 이렇게 생각해 보자. 당시 선배가 한 이야기의 요점은 네가 열심히 일했다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네가 한 일이 제대로 된 결과를 냈느냐가 중요하다는 뜻이었다. 실험을 해서 결과를 얻었다. "옳은"의 개념이 빠진 국내 번역대로라면 이것도 효과성이 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결과를 신뢰할 수 없어서 다시 실험해야 한다면 그 결과가 무슨 소용인가? 그렇게 때문에 우리는 "옳은" 결과를 얻기 위해 노력해야지 단순히 결과를 얻기 위헤서 노력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 때는 "열심히 일하고 욕 먹지 말자"로 표현했지만, 요즘 같으면 이런 말이 어울릴 것이다. "삽질하지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