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블이 마리우스의 개혁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레이블이 마리우스의 개혁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2014년 1월 30일 목요일

마리우스 개혁과 사병화

강대국의 비밀, 배은숙, p. 318
마리우스 개혁의 두번째 약점은 군인의 사병화 현상이 나타났다는 점이다. 하층민들을 입대시켰지만 그것만으로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다. 기존 방식대로 수십 년을 급여만 받으면서 복무하라고 한다면 병력 부족 현상이 또다시 일어날 수 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마리우스는 아프리카에 도착한 후 비옥하고 부유한 지역을 공격하여 빼앗은 모든 것을 병사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병사들 입장에서 땅과 돈을 주는 군사령관은 자신의 생계를 책임져주는 사람이었다. 정복한 국가의 땅을 병사들에게 분배하라고 최종적으로 승인하는 것은 원로원이지만 원로원이 그런 승인을 할 수밖에 없도록 압력을 넣은 사람은 군사령관이었기 때문이다. 자연히 국가에 대한 애국심보다 군사령관에 대한 충성심이 더 강할 수밖에 없었다.

마리우스는 자신의 개혁을 일시적인 임시방편으로 생각했던 것일까? 중산층의 붕괴로 병력자원이 고갈된 결과 무산자를 입대시켰고, 무산자는 무기를 자기 돈으로 구입할 수 없으니 재산에 따른 병종 구분이 무의미해서 대대 편제를 택한 것이 마리우스 개혁 아닌가? 그렇다면 마리우스가 전리품을 분배하는 방법으로 중산층을 강화하려 한 것은 로마군을 다시 중대 편제로 되돌릴 의사가 있었다는 의미이다.
생각이 복잡해진다.

마리우스 개혁과 기병

강대국의 비밀, 배은숙, pp. 312-314.
사진 속에 제시된 이유가 전부라면 마리우스의 개혁이 문제가 아니라 로마 자체가 기병에 약점이 있었다고 봐야 하는 것이 아닐까? 이 부분에서는 중대 편제로 개혁했을 때와 비교해 기병이 얼마나 약해졌는지를 보여 주지 않았기 때문에 논거에 수긍이 가지 않는다.

추가.
p. 322
아우구스투스 황제는 군단을 재정비하면서 기병대를 군단에 부속시켰다. 로물루스가 군단을 창단할 때부터 군단에는 300명의 기병이 있었다. 그러나 마리우스 이후 로마의 기병대는 상당히 약화되어 있었다.

뒤에 나온 내용을 보니 이제 말이 된다.

마리우스 군제 개혁을 보는 단상

강대국의 비밀, 배은숙, p. 304
마리우스가 봉착한 가장 큰 문제는 군대가 없다는 것이었다. 기존에 아프리카에 있던 병력은 북부 이탈리아를 위협하는 게르만족과의 전쟁에 투입되었고, 징집할 신병은 부족하였다. 군사력을 강화하는 데 있어서 재산자격은 하나의 걸림돌이었다. 결국 마리우스는 재산이 없는 사람들을 군에 입대시키는 방법을 선택했다. 결과는 예상 외였다. 인기 없는 정책이 될 것이라는 상류층의 예상과 달리 상당히 많은 병력이 모였다. 일거리 없이 떠돌던 하층민들이 적은 급여나마 받아 보려는 욕심으로 입대했던 것이다.

마지막 구절을 보면서 느끼는 것은 있는 자의 입장에서는 없는 자들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오늘날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단순한 경제적 논리가 아니라 국가통합의 차원에서 복지제도에 접근해야 하는 것이 아닌지 생각해 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