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4월 20일 토요일

<피의 기록, 스탈린그라드 전투>를 읽던 중 느낀 점

출처: 안토니 비버 저, 조윤정 옮김, 피의 기록, 스탈린그라드 전투, p. 237

당시 스탈린그라드 전선의 야전 병원들이 어떤 분위기였는지 알려주는 보다 흥미로운 단서는 모스크바의 슈체르바코프에게 보고된 "사회주의적 경쟁"의 결과에서 찾을 수 있다. 경쟁 결과에 따르면, 순위는 식품 공급자, 군의관, 운전병 순이었다. 이런 순위를 낳은 기준은 사실 의료진의 진정한 희생을 완전히 무시하고 있었다. 그들은 수혈을 위해 자신의 피까지 무척 많이 뽑았고 - 이따금 하루저녁에 두 차례나 - 그래서 자주 정신을 잃고 쓰러지기까지 했다. "그들이 헌혈을 하지 않는다면, 병사들은 죽을 것이다"라고 한 보고서는 설명했다.

이 문단을 읽으면서 "사회주의적 경쟁"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래서 잠깐 검색을 해본 결과 사회주의적 경쟁이 자본주의적 경쟁에 대비되는 개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사회주의적 경쟁은 생산수단에 대한 사회주의적 소유라는 조건에서 작업이 수행되고, 노동자 자신과 노동자들이 사는 사회를 위해 작업이 이루어지는 상황에서의 노동자들 사이의 경쟁과 동지적 협력, 상호부조의 유기적인 결합을 의미한다.
출처: http://www.laborsbook.org/dic/view.php?dic_part=dic03&idx=717

따라서 이 책에서 말하는 "사회주의적 경쟁"은 결국 스탈린그라드 전투에 대한 기여도를 의미하는 말인 것 같다.

2012년 9월 19일 수요일

강원함 역대함장

출처: http://wkfyd0188.blog.me/150029646500
지금은 퇴역하여 진해 해양공원에 전시되어 있는 강원함의 역대 함장 명판을 ANGMA 님의 블로그에서 발견하고 나름대로 강원함의 역사를 보존하는 차원에서 내 블로그에도 사진을 실어본다.


나는 16대 정재영 대령과 17대 김재하 대령을 함장으로 모시고 1년이 넘는 기간을 강원함에서 근무했다. 이 중에는 네이버 이웃 블로거인 대사님의 아버지도 계신데, 누구인지 대충 짐작이 간다.


2012년 4월 12일 목요일

4월 11 총선결과를 보고

이번 선거를 보고 가장 먼저 떠오르는 생각은 SNS의 영향력이 생각보다 크지 않다는 것이다. 물론 과거의 언로매체들이 거의 독점하다시피 하던 여론주도 기능을 SNS가 많이 약화시키기는 했지만, SNS를 주도하는 여론이 우리나라 여론의 전부가 아니었던 것이다. 투표율을 보라!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패스... 어디를 봐도 이번 총선에서는 투표율이 70퍼센트를 거뜬이 넘을 수 있을 것 같은 분위기였다. 그런데 최종적으로 나온 결과는 54.3퍼센트란다.
두 번째로 떠오른 생각은 실패에 대한 변명이 아니라 실패한 이유를 객관적으로 분석하지 않으면 앞으로도 이런 결과가 계속 나올 것 같다는 것이다. 지난 대선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승리할 때, 나는 그가 뛰어나서가 아니라 상대 후보가 바보라서 졌다고 생각했다. 상대 후보들은 이명박을 사기꾼이라고 비난했는데, 그렇다면 그 사기꾼보다도 지지율이 낮은 자기는 도대체 뭐란 말인가? 자기 스스로 바보라고 자인하는 그런 놈들을 누가 뽑아 준단 말인가? 비록 투표함 봉인문제로 결론이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지만 정동영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낙선하는 분위기다.

그런데 강남구의 투표함 봉인문제가 나와서 하는 말이지만, 그것을 갖고 이번 선거 전체를 판단해서는 안 된다. 새누리가 바보가 아니고서야 전국의 모든 선거구에서 부정을 저지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크게 봐서 열군데 선거구에서 부정이 있었다고 해도 새누리가 자력으로 승리한 지역은 100곳이 넘는다. 특히 이번 선거에서는 청와대의 민간인 사찰이라는 엄청난 이슈가 있었음에도 그것조차 아무런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한 느낌이다. 이렇게 된 데는 민간인 사찰을 심각한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그 문제를 제기하는 야당의 진정을 의심하는 국민들이 이렇게 많다는 의미로 봐야 하는 것은 아닐까? 그런 사람들을 단순히 친일수구꼴통이라고 생각하고 이 나라에서 없어져야 할 존재로만 치부하면 앞으로도 우리는 항상 이런 선거결과를 보게 될 것이다.

강남구의 투표함 문제는 반드시 따지고 넘어가야 하지만 그것이 이번 선거에서 여당을 심판하지 못한 이유는 아니라는 점도 분명하게 자각할 필요가 있다.

대충 생각나는 것을 마구 적었더니 글이 두서가 없다.

2011년 10월 21일 금요일

독자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는 책의 종류

처음부터 끝까지 정독해야 하는 책: 결론이 아니라 내용 자체를 즐겨야 하는 모든 책

한 단계를 완독한 후 다음 단계로 넘어 가야 하는 책: 아마 교과서 같은 학습서가 여기에 포함되지 않을까?

일부분만 읽어도 되는 책: 참고서. 그때그때 필요한 부분만 찾아 보는 용도의 책.

2011년 4월 8일 금요일

지하철의 양자화

의정부에서 서울로 들어가는 출근시간 지하철 1호선은 가끔 급행이라는 것이 존재해서 앞선 열차를 추월하는 경우가 있다. 인천급행은 의정부, 회룡, 도봉산, 창동, 성북에서만 멈추고 다른 역은 통과한다. 나처럼 회룡역에서 타는 경우 두 정거장만 멈추고 성북역에 도착하게 된다.
출근시간에 반드시 지하철을 앉아서 가야 하는 나는 성북역에 내리면 가급 서동탄행 열차가 거기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항상 자리에 앉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서 자주 성북역에서 열차를 갈아타는 편이다.
그런데 급행열차가 오기 바로 직전에 열차를 타게 되면 모든 역에 다 정차하면서 뒤에 오는 급행열차에 추월을 당해 성북역에는 오히려 늦게 도착하게 된다. 재미 있는 것은 급행열차를 타고 일찍 도착하든 그 앞의 일반 열차를 타고 몇 분 뒤에 도착하든 알고 보니 내가 성북역에서 갈아타는 열차는 그들 두 열차를 지나보낸 다음에 출발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결국 내가 회룡역에서 어떤 열차를 타든 성북역에서 대기하다가 출발하게 되어 결국 시청역에서 2호선으로 갈아타게 되는 시간은 똑같다는 말이다.
그런 생각을 하다보니 고등학교 화학시간에 원자의 양자거동에 대해 배웠던 것이 기억난다. 당시 나는 양자거동은 현실세계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그들만의 세계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내가 바로 양자들과 같은 거동을 보이고 있다. 그저 앉아 가기 위해 결국 최종 도착시간은 똑같아지는 방법을 택하고 있는 것이다.
앉아서 가는 데 집착하지 않았으면, 이런 엉뚱한 상상은 할 일이 없었겠지?

2011년 1월 8일 토요일

추억의 물건

 

문득 책상 서랍을 열었다가 발견한 아버지의 물건들 중 하나. 사진 속의 물건이 무엇인지 기억하고 있는 분들도 이제는 많지 않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뒷면을 찍은 사진을 보니 이것이 공중전화카드라는 사실이 분명해 지네요. 우리집에는 아직도 공중전화카드가 포장도 뜯지 않은 상태로 십여 개 정도 남아 있습니다.

아버지께서 상공회의소를 정년퇴직하고 잠시 계약직으로 몇 년을 더 근무하신 이래로 거의 10년이 흐른 것 같은데, 이 물건은 아직도 왜 이렇게 많이 남아 있는 것일까요?

혹시 공중전화박스가 아직도 남아 있다 하더라도 이 카드를 쓸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하지만 우리곁을 떠나신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왈칵 밀려오네요.

길을 가다 공중전화박스를 발견하면 옛친구들에게 전화나 한 번 해보려고 일단 한 장을 지갑에 넣고 나왔습니다.

2010년 12월 22일 수요일

위대한 3인의 전사들(원저: Masters of Battle)

제가 번역한 “Masters of Battle”이 플래닛미디어에서 출판됐습니다.

 

위에 보시는 것이 번역되어 나온 책입니다,

제가 갖고 있는 원서는 페이퍼백인데, 번역본은 아마 양장본으로 된 원서의 표지를 사용한 것 같습니다.

책소개는 옮긴이의 글로 대신하는 게으름 신공을 시전하겠으니 널리 양해하시기 바랍니다.

 

옮긴이의 말

이 책에서는 독특하게 같은 링 위에서 3명의 권투선수가 싸운다. 몽고메리는 롬멜과 난타전을 주고받은 끝에 제풀에 지쳐서 경기를 끝내지 못한다. 패튼은 롬멜을 쓰러지기 직전까지 몰아붙이지만 언제나 같은 편의 제지를 당한다. 두 선수의 거센 도전을 받는 챔피언, 롬멜은 언제나 자기 코치(히틀러)에게 발목을 잡힌다.

이 책의 저자 테리 브라이턴은 2차대전 유럽전선에서 가장 각광을 받았던 3명의 장군을 같은 링에 세워서 싸우게 한다는 발상을 적용함으로써 식상한 재료에 새로운 조리법을 도입해 색다른 요리를 만들어내듯이 이 책에서 위대한 지휘관의 조건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펼쳐 보였다.

브라이턴은 특정 순간에 롬멜과 패튼, 몽고메리를 차례로 보여주는 방법을 사용했기 때문에 당시 상황을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균형 잡힌 시각으로 제시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따로따로 제시했을 때에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을 사건이나 행동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했다. 아주 간단한 예로, 유럽에서 한창 전쟁이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미군이 참전하기만을 기다리며 안달복달하는 패튼의 모습이 이 책에서는 아주 생생하게 담겨 있다. 유럽에서 피비린내가 진동하고 있을 때 미국에서 한가하게 일상을 보내야 했던 패튼의 초조한 심정을 이 처럼 극명하게 보여주는 책은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우리가 이 책을 읽으면서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면, 폰 클라우제비츠의 『전쟁의 원리』에서 저자가 인용한 문구이다. 전쟁 이론은 과감한 행동을 선호한다. 하지만 과감함의 정도는 개인적으로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위대한 지휘관은 자신의 장점과 단점을 잘 파악하고 그 범위 내에서 과감한 결단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이다. 저자가 본문의 내용에 명시적으로 그런 사상을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이 책을 끝까지 읽은 독자라면 저자가 책 속에 풀어낸 모든 이야기는 결국 ‘과감한 결단’이라는 단어로 귀결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기본적으로 이 책은 2차대전 당시 세 장군의 경쟁을 제일 먼저 챔피언의 자리에 등극한 영리한 롬멜을 상대로 도전자 패튼과 몽고메리가 함께 링에 오른 권투시합으로 묘사한다. 패튼은 롬멜보다 더 롬멜다운 방식을 통해 그를 극복하려고 했고, 몽고메리는 롬멜과 정반대되는 방법으로 그를 이기려고 했다. 그 결과 패튼은 과감함의 극치를 달렸고, 몽고메리는 신중함의 극치를 달렸다. 패튼은 승리를 하기 위해 싸웠고, 몽고메리는 패하지 않기 위해 싸웠다.

신중한 몽고메리와 과감한 패튼은 한편이 되어 영리한 롬멜과 싸우는 동시에, 자기들끼리 치고받는 또 다른 싸움을 벌인다. 결국 그 링 위에서 이긴 쪽은 신중한 몽고메리였다. 과감한 결단을 선호한다는 전쟁 이론이 틀린 것일까? 우리는 여기서 과감한 결단이 단지 위험한 행동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몽고메리는 전격전이라는 새로운 전술이 눈부신 효과를 보이며 모든 사람들의 눈을 멀게 했을 때 전격전을 버리고 소모전을 택하는 모험을 감행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과감한 행동을 외칠 때 그는 모든 비난을 감수하고 신중한 방법을 택한 것이다. 그러나 그가 단순히 신중하기만 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시칠리아 전역의 초기 단계에서 잘 드러난다. 이 책에서 저자의 어조는 계속해서 몽고메리를 비난하는 분위기이지만, 우리는 롬멜의 영리함과 직관력, 패튼의 과감함과 더불어 몽고메리의 신중함도 주목해야 한다.

옮긴이는 독자 여러분에게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끝내기 전까지 절대 어떤 결론을 내리지 말 것을 권고한다. 저자가 단순히 전쟁 이론이 과감한 행동을 선호한다고 해서 그것만 제시하기 위해 이 책을 쓴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가 진짜 하고 싶은 말은 독자 여러분이 직접 확인해보기를 바란다.

끝으로, 어떤 이유인지 모르지만 일제식민지 조선어 어투를 익히게 된 나의 번역을 교정하느라 한동안 패튼처럼 다채로운 욕을 입에 달고 살았을 도서출판 플래닛미디어의 편집자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며, 몽고메리처럼 세밀하지도, 패튼처럼 과감하지도, 롬멜처럼 영리하지도 않은 나의 글쓰기 능력을 탓하며 역자 후기를 이것으로 줄인다.

2010년 12월 10일

김폭뢰(별명임)